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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춘향사당을 복원하고 최초 춘향 영정을 복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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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4년02월29일 12시36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최초 춘향사당을 복원하고 최초 춘향 영정을 복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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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춘향 사당을 복원하고 최초 춘향 영정을 복원하라 서명서 발표

 

(종합문예 유성 신문 정용완 기자) 29일 11시에 광한루 정문앞에서 "최초 춘향사당을 복원하고 최초 춘향영정을 봉원하라" 성명서를  최초 춘향영정복원 위원회에서 발표하였다.

 

올해는 3.1 운동 105주년이자 94회 춘향제를 맞이하는 해다. 

 

일제강점기인 1931년에 시작된 춘향제는 조국과 민족을 향한 일편단심을 춘향의 일편단심이라는 상징으로 표현해 낸 민족 축제였다. 최초 춘향영정에는 조국과 민족을 향한 일편단심이 담겨 있다. 영정 속 춘향은 빨강 계통의 분홍색 웃저고리와 파랑 계통의 남색 치마를 입어 태극 문양을 상징하고 있다. 이 영정을 봉안하기 위해 건립한 최초 춘향사당 역시 태극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1938년 조선총독부 출신 식산은행장 하야시 시게조는 민족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친일화가 김은호에게 지시하여 내선일체의 가부키 춘향 그림을 그리게 했다. 1939년에는 최초 춘향사당과 최초 춘향영정이 초라하고 지저분하다며 최초 춘향사당을 일본 신사 스타일의 가부키 춘향사당으로 개조해 버렸다. 1939년 제9회 춘향제는 가부키 춘향사당과 가부키 춘향 그림으로 제향을 지내야 했던 비극의 축제였다. 

 

1962년에 최초 춘향영정은 독재 정권의 내각수반이던 송요찬에 의해 아예 최초 춘향사당에서 쫓겨나고 만다. 1969년에는 최초 춘향사당마저 광한루 확장의 명분으로 철거당한다. 현재 춘향사당은 김은호의 가부키 춘향 그림을 봉안하기 위해 새로 건립된 것이다. 이 사당의 현판 정면에는 거북이와 토끼 위에 붉은 원이 그려져 있다. 일장기를 연상케 하는 문양이다. 1931년 최초 춘향사당에서는 이것이 태극 문양으로 그려져 있었다. 

⛰최초춘향 사당을 복원하고 최초 춘향 영정을 복원하라 서명서 발표

 

이환주 전 시장은 춘향영정 봉안 문제를 시민들과 논의하여 풀어가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최경식 시장은 일방적으로 남원문화원에 이 문제를 위탁했고, 남원문화원은 편파적인 봉안추진위원회를 꾸려 여론을 무시하고 새 영정 제작을 강행했다. 그렇게 탄생한 김현철 화가의 새 영정은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화가는 17세의 젊고 아리따운 춘향을 표현하려고 했다 하나 그림 속 춘향은 도저히 십대라고 보기 힘든 중년 여성이었다. 곱고 순수한 자태가 드러나는 것도 아니요, 목숨을 바쳐 지켜내고자 했던 지조가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전국적으로 새 영정이 춘향의 덕성이나 기품을 제대로 표현해 내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최초 춘향영정의 역사성과 시민들의 공론장 요구를 무시하고 밀실적, 독단적, 편파적으로 강행한 새 영정 제작이 초래했던 웃지 못할 비극이었다. 

 

최근에는 남원의 일부 원로 인사들과 춘향정신문화보존회 등이 김현철 작가의 영정을 비판하며 또 다른 영정을 제작하자고 주장한다. 김현철 작가의 영정이 아름답고 앳된 처녀의 모습이 아니기에 그 형상으로는 판소리 춘향가도 부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엄혹한 일제강점기에 민족의 혼을 살려내기 위한 염원으로 제작한 춘향영정, 춘향사당의 역사를 무시하고 영정 봉안 문제를 미인대회로 전락시키는 행태다. 이미 수억 원의 세금을 쏟아부어 새로 제작한 영정이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엿이 살아남아 있는 최초 춘향영정을 무시한 채 오로지 미모만을 문제 삼아 또 다시 수억 원의 세금을 쏟아부어 새 영정을 제작하자는 주장이 과연 절개와 지조의 춘향 정신을 담아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춘향영정의 역사와 의미를 무시하고 세금을 함부로 낭비하는 그릇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근본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한다. 최초 춘향영정과 최초 춘향사당은 민족의 혼을 살려내기 위해 최봉선 의기를 비롯한 당대 백성들의 자주적인 헌신과 투쟁으로 만들어진 귀중한 유산이다. 그 의미를 알았기에 일제와 친일파들은 끝없이 최초 춘향영정을 모욕하고 무시했으며 민족 축제인 춘향제를 탄압했던 것이다. 춘향영정은 친일파의 손으로 그려질 성질의 것이 아님은 물론이거니와 오로지 영정 속 춘향의 미모나 나이로만 평가될 성질의 것도 아니다. 최초 춘향사당을 복원하고 최초 춘향영정을 봉안하는 일은 민족의 정기를 되살리고 친일, 친독재의 잔재를 청산하며 남원의 역사, 나아가 우리나라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2024년 3.1운동 105주년을 맞이해 민족의 혼으로 건립한 최초 춘향사당을 복원하여 최초 춘향영정을 봉안하라!

 

 


              [종합문예 유성 신문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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