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후원하기
뉴스등록
포토뉴스
RSS
네이버톡톡
맨위로

'영남 알프스'의 산군(山群)에 속하는 재악산(載岳山)과 최고봉인 사자봉(獅子峰)이며, 제2봉인 수미봉(須彌峰)을 생각한다-

등록일 2022년05월18일 06시32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영남 알프스'의 산군(山群)에 속하는 재악산(載岳山)과
최고봉인 사자봉(獅子峰)이며, 
제2봉인 수미봉(須彌峰)을 생각한다-

 밀양시와 시의회 및 밀양문화원과 시 산하 각 사회단체가 일치 단결하여 출범한 [호국성지 밀양 표충사(表忠寺) 배산(背山) 재악산(載岳山) 산 이름 바로세우기 추진운동]의  동참을 호소합니다.

경남 밀양은 예로부터 경북 안동과 쌍벽을 이루는 선비의 고장으로서, 
서훈 독립운동가를 일백 명이나 배출한 충의, 의열의 고장이기도 합니다.

재악산(載岳山) 표충사(表忠寺)는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하는데 앞장을 섰던 사명대사를 비롯하여 그의 스승인 서산대사와 충청도의 기허대사 등, 삼대 의승장들의 애국 충절을 기리기 위해 경내에 표충서원(表忠書院)을 지어 위패를 모시고 해마다 유림계와 불교계가 연합하여 춘추로 향사(享祀)를 받들고 있는 명실상부한 호국사찰입니다.

국민 여러분!

그런데 조국이 해방된 지 77년이 된 지금도 일제가 황국신민(皇國臣民)의 산인 양, 왜곡 날조한 치욕적인 그 천황산(天皇山)이란 이름읕 청산하지 못한 채 그대로 사용하도록 방치되고 있는 게 현실이니,

참으로 기막힌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호국성지인 표충사 배산의 원래 이름은 <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수많은 고문헌과 조선 초기의 보수공사 때 제작된 <표충사 삼층석탑 개수 탑기비>에도 재악산(載岳山)으로 새겨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산이 울산광역시와
밀양시의 경계에 위치해 있는 관계로 울산 쪽에서는 아직도  
그 산의 이름을 일제가 왜곡 날조한 천황산(天皇山)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고,

제2봉인 수미봉(須彌峰)마저도 별개의 산인 양 재약산(載藥山)으로 지칭하며 '영남의 알프스'라 칭하는 산군(山群)의 최고봉 모두를 등정한 산악인들에게 수여하는 기념패에도 그 치욕적인 산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니, 참으로 기막힌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민 여러분!

여러분들도 시간이 나시면 산천경개가 수려한 호국성지 밀양 표충사를 한 번 다녀오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불초 소생의 고향 마을 앞에 위치한 그곳 표충사(表忠寺)의 산문(山門)에 <護國聖地 表忠寺>와 <載岳山門>이라 새겨진 편액이 전후 양면에 새로이 걸려 있고,

홍제교 건너편의 일주문(一柱門)에도 <載岳山 表忠寺>라 새겨진 편액이 높다랗게 걸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 밀양 출신의 약산(若山) 김원봉(金元鳳)이
한성으로 올라가 오성학교에서 수학하기 전까지 그가 1년 넘게 머물렀던 곳도 호국의 성지인 밀양 표충사였습니다.

 그가 독립운동가의 꿈을 안고 군사 강국인 독일 유학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가
고모부로서 무오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북로군정서>에 참여한 백민 황상규 선생의 도움으로 천진의 독일계 학교인 덕화학당에 다니다가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독일 유학의 꿈을 포기하고 남경의 금릉대학에 다니던 중, 

대일 무력투쟁에 직접 뛰어들기 위해 만주의 통하현 합니하에 있던 신흥무관학교에 들어가 군사학을 배우다가 동지들을 규합하여 강력한 대일 무력투쟁을 위해 <의열단>을 창단하게 된 것도,

일찍이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에 재악산 표충사에 들어와 1년이 넘도록 각종 병법서를 공부하며 날마다 재악산의 최고봉인 사지봉(獅子峰)을 오르내리면서 체력단련과 무술 연마에 주력하였던 것도 사명대사의 충의정신과,

표충사가 호국의 성지였다는 사실과 결코 무관치 않음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신흥무관학교의 동지인 대구의 이종암과 동향의 윤세주, 김상윤, 한봉근, 한봉인 형제를 비롯한 여타 13명의 동지들과 <의열단>을 창단하여,

박재혁의 <부산경찰서 투탄의거>, 최수봉의 <밀양경찰서 투탄의거>, 김익상의 <조선총독부 투탄 의거>, 오성륜과 김익상의 <상해 황포탄 투탄의거> 등,

연이은 무력투쟁으로 일제 원흉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 약산 김원봉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혁혁한 무력 독립투쟁에 관한 공적에 대해서는 해방 후 월북한 그의 행적 문제 때문에 아쉽게도 남북이 하나가 된 통일 이후에나 본격적으로 논의될 문제일 수도 있겠으나,

호국의 성지인 표충사 배산의 
이름을 바로 세우는 일은 정치적인 이념과 진영 논리를 초월하여 더 이상 미루지 않고 바로 실천하는 것이 우리들의 시대적 사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 밀양에 가면 독립운동 기념관에 더하여

근년에 밀양시에서
김원봉과 윤세주가 앞뒷집으로 나란히 살았던 해천껄의 김원봉 생가터에 <의열 기념관>을 새로 세운 것도,

위로는 세종 때 대마도를 정벌한 박위 장군과 임진왜란 때 구국의 의승장으로 크게 활약한 사명대사의 충의정신과, 

아래로는 <풍기 광복단>과 <북로군정서>의 백민 황상규와 <서로군정서>의 회당 손일민, <흥업단>의 단애 윤세복>, <의열단>의 약산 김원봉을 비롯한 일백 명의 밀양 출신 서훈 독립운동가들의 애국 충혼을 기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임 을 저는 향리인의 한 사람으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한국문인협회 인성교육개발위원 및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정대재

배근익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올려 0 내려0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문예유성 오피니언 문학

포토뉴스

기부뉴스

여러분들의 후원금으로
행복한 세상을 만듭니다.

현재접속자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