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령탑)
종합문예 유성 신문 정용완 기자) 10월 13일 오전10시에 사회적 거리 유지와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나고 점점 잊어가고 남원초 6학년 학생들이 수학여행 가는 도중에 청춘의 꽃이 피기 전에 열차 대형 사고 난 지 50년의 세월이 흘렀고 기억 속에서 멀어져 간다.
(이미선 시의원추모식에 참여하여 묵념하는 모습)
50주년 추모 행사는 김양오 작은 변화포럼 대표가 김영기의 시의 추모 시 낭송과 이미선 시의원, 임종명, 노암동 동장 등 시민들의 자발적인 행사로 덕음산 오감만족 숲길 끝자락에 묘소 있고 수풀에 가려져 있어 보이지 않고 나뭇잎이 떨어지면 위령탑만이 희미하게 보이고 있다.
(작은변화포럼 대표 김양오 참석하는 모습)
철로는 기역 자 형으로 50년 전 열차 참사를 가져왔고 남원역 열차 추돌 사고南原驛列車追突事故)는 1971년 10월 13일 새벽 6시경 남원역 플랫폼에서 남원에서 군산으로 수학여행을 가려던 남원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과 남원에서 전주로 가던 전주공고 학생들이 탄 순천~서울행 제192호 완행열차가 고갯길에서 제동장치가 고장이 나면서 후진, 뒤에 있던 유조 열차와 부딪혀 충돌한 사고이다.
(임종명 참석하는 모습)
이 사고로 인하여 남원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과 남원에서 전주로 통학하는 전주공고 학생을 포함해 20명이 사망하고 48명이 상처를 입었다.
(시신을 수습하고 묘지를 조성)
사고는 고갯길의 남원역에서 수학여행단을 태운 순천~서울행 제192호 완행열차의 제동장치가 고장 나 후진으로 계속 진행하다가, 짙은 안개로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후진하던 제1134호 유조 열차를 발견하지 못한 채 충돌, 열차가 지붕 위로 치고 올라오면서 앞 차량이 하중을 이겨내지 못하고 탈선해 발생하였다.
(참석하시는 분들께서 묵념하는 모습)
그들의 영혼을 기르기 위해 이정규 전)시장께서 시신을 수습하고 묘지와 위령탑을 만들어 그들의 청춘의 꿈을 펼치지 못시는 분들께 슬픈표정으로 묵념을 가졌다.
[종합문예 유성 신문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