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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회 춘향제에서의 특별한 만남

안영숙(진주:경상대학교 학술연구교수,문학박사)

등록일 2022년05월11일 19시39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사진설명:제92회춘향제에 최초 남원 여성 농악단 춘향제 얘기에 진주와남원간의 특별한 만남>

 

(종합문예 유성신문 정용완 기자) 필자는 지역축제를 통해 축제학 담론을 확립하기 위한 연구를 하는 축제학 연구자이기도 하고 지역학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아카이브로 구축하기 위해 지역의 문화사를 인문사, 예술사, 생활사로 분류해서 지역정체성을 나름대로 규정하고 정립하려는 지역학 연구자이기도 하다.

 

지역학 연구자라는 입장에서 필자는 한국을 관통하는 한국정신을 호국정신, 평등정신, 장인정신에서 찾고 그것을 경남지역에서 먼저 확인하여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지역정신을 규정하여 아카이브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남원 역시 한국정신 이해라는 큰 틀에서 호국정신, 평등정신, 장인정신을 중심으로 남원정신을 규정할 만한 것이 있는지 다년간 연구하고 있다. 

 

특히 근현대 이행기의 문화사를 중심으로 영호남 점이지대가 갖는 특성을 남원에서도 발견하였기에 자연스럽게 남원의 역사 인물, 남원의 정신적 자산, 대표적인 사건, 축제, 생활사를 유심히 살피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축제를 통해 양 지역이 교류한 인물을 중심으로 남원정신을 확인하는 것이다. 필자는 대표적인 것이 춘향제로 보고 있다.

 

 춘향제를 통해 억압된 민중의식이 표출되고 여성 중심의 제례 의식 참여, 여성들이 축제에서 기량을 펼침으로써 평등정신을 실현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만인정신을 통해 남원의 호국정신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남원목기를 제작하는 장인들을 통해 실용주의적 장인정신을 확인한 바 있다.

 

현재는 평등정신을 남원의 형평사, 동학운동 등에서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한 편으로 예술 영역에서 그것이 어떻게 표출되고 있는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남원과의 연결고리인 강상호의 형평운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지점이 증언과 근현대이행기 발행 자료들에서 확인되고 있다.

 

독립운동가요 형평운동가인 강상호는 경남지역 독립운동가인 강재순의 맏아들이며 전국 최초로 소년운동을 벌인 아동문학가 강영호와 한국서양화 1세대이면서 경남 최초의 서양화가로 천재화가라는 평가를 받고 한국 화단을 빛낸 강신호의 형이다. 필자가 강상호의 가족을 피력하는 이유는 춘향영정을 그리는데 공헌을 한 인물이 강상호라는 점이고 그의 가족이 영향을 주고 받았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즉, 최초 춘향 영정은 단순히 기생의 딸로 태어나 이몽룡의 아내로 정절을 지킨 어사부인으로 봄과 같은 향기가 나는 여인을 넘어선 초월적인 의미가 있다.

 

이민족의 박해 속에서도 민족 해방이라는 봄의 향기인 자유를 되찾기 위해 저항해 온 독립운동가들의 저항정신과 남원 지역민들이 추구해 온 평등정신이 최초 춘향 영정에 담겼을 것이다. 

 

암울한 조국의 현실을 극복하는데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남원권번 소속 기생들의 염원을 응축하여 춘향 영정에 담았고 이것의 목격자이고 주동자인 최봉선은 최초 춘향 영정을 지킴으로써 호국정신과 저항정신, 평등정신을 실천했다고 볼 수 있겠다. 

 

알다시피 영정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특히 지역의 상징으로 삼는 역사 인물 영정은 지역의 시대정신을 다양한 방식으로 담는다.

 

그러니 최초 춘향 영정은 단순히 특정 화가가 그린 전시용 그림이 아니라 시대정신으로서의 남원정신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영호남 지역 인물들이 교유(交遊) 과정에서 남긴 족적이 지역정신의 한 축이 되고 있다는 것은 현재 구호에만 그치는 영호남 화합에 경각심을 주기에도 충분하다. 

 

이번에 남원을 방문하게 된 것은 지역학 연구자로서 경남정신을 연구하면서 영호남 점이지대에 위치한 지역의 인문정신과 예술사를 통해 공통분모를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요행이 따라서 이번에는 진주에서 논개제가 개최되는 시기에 춘향제가 동시에 양 지역에서 개최되어 자연스럽게 두 지역 축제를 연구자의 관점에서도 볼 수 있었다. 

 

한마디로 남원정신을 예술사에서 찾을 수 있는가 하는 연구자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단서까지 찾을 수 있는 경험이었다. 

 

특히 필자의 이번 남원 방문은 지역학 연구와 축제학 연구라는 측면에서 몇 가지를 확인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가장 먼저 남원의 평등정신 계승양상을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하기에 남원역사모임을 이끌어 가는 선생님께서 제공해 주신 강상호의 족적을 확인하고자 했다.

 

진주 출신 독립운동가 강상호가 한국 최초의 인권운동이었던 형평운동을 주도하면서 남원 광한루에서 직접 사진을 남긴 것은 단순히 관광이나 여흥의 목적이 아니었음은 짐작하고도 남기에 남원에 도착해서도 그것에 집중했다. 

 

전국 최초로 진주에서 기생독립만세운동이 있었고 기생들의 저항정신을 익히 알고 있던 강상호가 남원권번 기생인 최봉선과 교류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는 증언도 있었다.

 

2013년 4월 24일 진주의곡사 법회에 참여했던 모(당시86세, 1927년생, 진주시 봉래동 거주)노보살 개인 정보 보호 및 그의 후손들에게 미칠 영향 등을 우려한 노보살의 입장을 고려하여 더 이상의 정보는 공개하지 않았다.


은 자신이 대여섯살때 이암지사를 지내러 오는 남원기생, 고성기생, 부산기생들이 며칠씩 자신의 집에 머물면서 이런 저런 것들을 준비했던 것이 기억난다고 했으며 경상도 말을 사용하는 남원기생 중 한 명에게는 봉서이 이모(진주에서는 사람 이름을 부를 때 ㄴ을 탈락시킬 때가 있고, 최봉선으로 추측)라고 불렀다고 기억했다.

 

낮에는 검정색 두루마기를 입은 어른들이(강상호는 검정색 두루마기를 항상 입고 있었음) 와서 남원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는 증언을 들은 바 있다.

 

연구자는 앞으로 더 확실한 증거와 사료를 찾기 위해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문헌 증거 확보가 어려워 구술 증언이나 당시 언론 정보 등을 통해 양 지역의 근현대이행기 역사인물의 교류 양상을 지속적으로 밝히는 연구를 진행할 것이다. 
 
진주에는 진주권번에서 활동했던 기생들 중 권번에 적을 두지 않고 그들의 동료들이 차린 요리집에서 일하면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던 예인들이 그들의 자녀들(모노보살은 여닐곱살부터 자신의 어머니의 일을 도왔다고 함)과 함께 논개 제사를 지낼 무렵 음식 만드는 일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었다고 한다. 의기사 제사가 있는 날이면 전국의 기생 대표들이 방문하였는데 남원과 구례, 운봉 지역의 기생과 소리꾼들도 장대동 여각과 봉래동 일대, 그리고 일부는 진주성(증언자에 따라 진양성, 촉석성 등으로 지칭하는 경우가 있으나 모두 진주성을 말함)안의 민가에서 기거하기도 했다고 하며 최봉선 등은 의기사와 가장 가까운 성안 민가에서 여정을 풀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1980년대 진주성 정화사업이 본격화되기 이전 진주성 안에는 민가가 많았다. 증언자의 증언에 따르면 이암지사(논개제사를 지칭, 이 지역에서 70-80세 이상의 노인들은 논개라는 이름보다 이암이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를 지내지 못하게 해서 기생들이 밤에 몰래 물만 떠 놓고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당시 진주에는 조선 마지막 궁녀로 알려진 인물들과 조선 최고의 기생이라고 알려진 인물들이 노년을 보내고 있었고 강상호 집도 봉곡동으로 이사를 하기 전까지 진주성안에 있었다고 한다.

 

물론 최봉선이 진주 의기사에서 거행했던 논개제사에 참여해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아직은 찾기 어렵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실증적인 자료를 찾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하지만 그가 의기사와 가까운 진주성안 민가에서 머무르면서 제례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것은 앞서 밝혔듯이 일부 증언자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진주와 남원지역의 뜻있는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최근 몇 년간 남원지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최초 춘향 영정을 최봉선이 강상호에게 의뢰하여 그리게 된 경위를 추적해 보면 일제강점기라는 민족적 수난을 극복하려는 당시 독립운동가의 염원이 담긴 의미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이번의 남원 방문은 춘향제에서 전통문화를 지킨 남원정신의 산 증인을 만난 것에 의미를 둘 수 있다. 진주에서 개최하는 논개제와 같은 날 개최하고 있는 춘향제에 남원에서 역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의 초대로 독립운동가요 형평운동가인 강상호선생의 아드님인 강인수선생님,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신진균 운영위원장님과 함께 광한루에서 진행된 의미있는 공연을 볼 기회를 얻었다.


 <사진 설명: 장봉녀, 배분순,박복례, 노영숙, 강경식, 김경숙, 김양오의 신.구 합동 공연하는 모습>

 

장봉녀, 배분순, 박복례, 노영숙 선생님의 공연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공연이었고 온 몸에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분들이 진주에 공연을 위해 방문했다는 사실은 확인하였으나 최봉선과 함께 진주에서 어떤 일정을 소화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나도 모르게 '그래 이게 바로 남원 예술사가 지닌 남원정신이구나!' '이게 예향 남원의 진정한 아우라구나!' 공연 순간 순간에 느꼈다. 남원과 진주 모두 전통문화예술의 맥을 잇는 곳이기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결을 발견할 수 있어서 연구자로서는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전통문화는 누군가에게는 잊혀진 것이고 누군가는 잊어야 하고 누군가는 잊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누군가는 잊혀진 것을 찾으려 하고 누군가는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누군가는 지킬 것이다.

 

남원시는 사회적 책무 이행이라는 측면에서 전통의 발굴, 재 맥락화 계승과 전승, 활용이라는 것에 방점을 찍고 춘향제를 통해 축제향유자들이 그분들의 활약상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특히 춘향제에서 한국 최초로 조직되었다는 남원여성농악단의 증언과도 같은 공연을 보인 것은 미스춘향선발대회나 민속예술경연대회보다 더 큰 메시지를 축제향유자들에게 던졌다.

 

그분들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춘향제 정신의 한 맥이 될 수 있다. 남원여성농악단을 이끌었던 예인들이 생존해 계신다는 것은 분명히 남원만의 복이며 하지만 시간은 남원의 자부심인 그분을 그대로 두지 않을 것이다.

 

남원이 지금 당장 서둘러야 할 것은 바로 이분들의 증언을 기록화하는 작업이고 아흔 살이 넘으셨기 때문에 노인의 건강은 하루를 장담할 수가 없다.

 

더 늦기 전에 전국에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연구하는 연구자들과 지역학 연구자, 그리고 공연예술 맥을 잇고자 하는 예술인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인터뷰를 하고 아카이브 작업을 하고 남원 소재 학교에서 여성농악을 복원하여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과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일례로 진주는 민, 관, 학, 연이 합심하여 전통문화 복원과 명맥 유지에 전심을 다하고 있다. 이를테면 정현석이 남긴 [교방가요]의 기록을 번역하여 학계가 지속적으로 연구를 할 수 있게 하고 악, 가, 무, 시, 서, 화 영역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재의미화를 시도하고 있으며 진주솟대쟁이놀이를 복원하여 진주오광대, 진주삼천포농악과 함께 공연예술을 재맥락화하고 있고 이것이 연구로 이어지기도 한다.

 

남원도 진주처럼 민, 관, 학, 연이 한마음으로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면서 남원의 전통문화자산을 복원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면 남원의 예술적 장인정신을 한국 최초의 여성농악단에서도 마련할 수 있겠다. 

 

이유불문하고 여성농악단 존재 자체는 남원이 강조하는 춘향정신을 잇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개천예술제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남원 예인들도 해마다 축제에 참여하여 양 지역의 문화예술 전파에 공헌을 했다는 것을 문헌과 증언으로 이미 확인한 바 있고 그 산 증인을 이번 공연에서 만났지만 이제야 만난 것에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한국의 전통문화예술 장인들을 뵈면서 전율을 느꼈으나 마음 한쪽으로는 무거운 과제를 안고 왔다. 춘향제가 나서서 이분들을 알리는데 앞장설 수는 없는가라는 고민도 했다. 

 

  춘향제는 잘 알다시피 일제 때 축제라는 용어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사용되면서 전통을 계승한 첫 지역축제라 할 수 있다. 외연적으로는 판소리계 소설 중 하나인 춘향전 주인공인 춘향을 모티프로 하여 광한루원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축제라 할 수 있지만 그것의 탄생 배경을 안다면 춘향제는 축제 자체가 축적해 온 92년이라는 역사성보다 더 중요한 남원의 지역정신을 반영하면서 정체성을 지켜 온 축제임을 자각하게 된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춘향제의 과거 역사를 추적하다 보면 축제의 제의적 기능을 활용하여 춘향 영정을 통해 애국심을 결집하고자 했던 선지자들의 의식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살아있는 선지자들을 통해 춘향제가 다른 지역의 축제와 차별화된 축제가 갖는 유희적 기능보다 더 소중한 남원만의 상징적 의미를 확인할 수 있어서 그 정신을 재의미화하고 축제에 반영한다면 한국을 대표하는 100년 전통의 축제는 충분한 아우라를 담을 수 있을 것이다. 

 

 

 


                     [종합문예 유성신문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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